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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쇼의 이면에 숨겨진 야망과 허상, 시카고

by power1236 202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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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는 1920년대 금주법 시대의 시카고를 배경으로, 살인이라는 범죄마저도 쇼로 소비하는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뮤지컬 영화다. 매혹적인 음악과 군무, 그리고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 속에 담긴 허영과 진실의 경계는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뮤지컬 영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오랜 시간 동안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고 있다.

범죄도 쇼가 되는 도시, ‘시카고’라는 무대

2002년, 롭 마샬 감독의 뮤지컬 영화 ‘시카고(Chicago)’는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작품을 스크린 위로 옮기며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극도, 화려한 쇼의 나열도 아니다. ‘시카고’는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사회의 민낯과, 욕망이라는 인간 본성을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배경은 1920년대 금주법 시대의 미국 시카고. 도시 전체가 재즈, 술, 범죄, 스캔들로 들끓던 시절이다. 그 속에서 스타가 되고 싶었던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는 외도를 들킨 후 애인을 살해하고 체포된다. 그녀는 감옥에서 전설적인 또 다른 살인범 벨마 켈리(캐서린 제타존스)를 만나게 되고, 이내 언론과 대중의 시선을 통해 ‘살인마 스타’가 되는 과정을 밟아간다. 법정은 더 이상 정의의 공간이 아니며, 미디어는 진실보다 자극적인 서사에 열광한다. ‘시카고’는 바로 그 왜곡된 현실을, 화려한 무대와 뮤지컬 넘버로 표현하며 역설적인 방식으로 폭로한다. 재즈 음악과 섹시한 군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영화는, 단 한순간도 관객의 눈을 뗄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화려함 속에 감춰진 냉소는 명확하다. “이 세상은 쇼다. 그리고 그 쇼를 지배하는 자가 곧 진실을 만든다.” ‘시카고’는 무대 위의 극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연극처럼 조명한 작품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날카롭고도 세련된 힘을 지니고 있다.

 

진실은 필요 없다, 대중은 쇼를 원한다

‘시카고’의 핵심은 바로 **진실보다 서사**라는 메시지다. 록시 하트는 단지 살인을 저지른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재능 있는 변호사 빌리 플린(리처드 기어)의 전략 아래, 순식간에 ‘불쌍한 희생자’에서 ‘운명적 비련의 스타’로 재포장된다. 이 영화는 언론이 어떻게 진실을 포장하고, 대중은 어떻게 그것을 소비하며, 결국 어떤 거짓이 ‘진실처럼’ 자리 잡게 되는지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벨마 켈리 역시 과거의 스타였지만, 새로운 스캔들이 필요해지자 록시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다. 두 여성은 적이자 거울 같은 존재로, 끊임없이 경쟁하며 점차 서로를 닮아간다. 뮤지컬 넘버 속에서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연출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학이다. 현실의 감옥, 법정, 언론 인터뷰가 무대 위 퍼포먼스로 환기되며, 관객은 ‘현실이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인가?’를 끊임없이 되묻게 된다. ‘Cell Block Tango’, ‘Razzle Dazzle’, ‘All That Jazz’ 등은 단순한 노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각각의 곡이 등장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시대의 욕망과 사회의 위선을 대변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시카고’는 뮤지컬이라는 형식의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오히려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를 정교하게 구현해 낸 작품이다.

 

‘쇼’가 끝난 뒤 남는 것

‘시카고’는 진실이 조작되고, 범죄조차 스타로 포장되는 세계를 비판하면서도 그 모든 과정을 매혹적으로 보여준다. 관객은 끊임없이 눈과 귀가 즐거워지는 화려한 쇼를 보며 즐기지만, 동시에 “나는 지금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가?”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결국 영화는 말한다. “현대 사회는 진실보다 잘 짜인 이야기, 정의보다 극적인 연출을 더 원한다.” 그리고 그 쇼의 무대는 법정, 언론, 정치, 대중의 눈앞에서 날마다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암시한다. 마지막 장면, 록시와 벨마가 함께 무대에 서서 “우리는 이제 어떤 진실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춤추는 모습은 화려하면서도 씁쓸하다. 그 춤은 자유가 아닌 체념이자, 승리가 아닌 적응이다. 그래서 ‘시카고’는 단지 과거의 쇼비즈니스 세계를 그린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다룬 풍자극이며, 인간이 욕망과 생존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그려낸 현대극이다. 쇼는 계속된다. 그러나 그 쇼가 끝난 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시카고’는 그 질문을, 음악과 춤을 통해 강렬하게 던지는 걸작이다.